아무래도 이번 봄은 이렇게 올 듯 말 듯 사람 애간장을 다 태우고서야 남몰래 천천히 내려앉을 모양입니다. 어쩌다 둘러본 풍경을 그리는데에 새로운 물감이 몇 개 쯤이나 더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오후에 집 안 깊게 드는 일광을 받으며 자는 잠이 더 즐거워지고 괜시리 걷는 걸음이 바람에 꽃향기 날 듯 나풀거리면 그제서야 봄을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. 지천에 개나리가 피고, 목련은 제 손을 모두 펼치고 벚꽃인지 매화인지 구분안갈 꽃들이 점묘화처럼 피어나면 사소한 일에도 입꼬리가 한껏 가벼워집니다. 꽃들은 저마다 약속이라도 한 듯 순서를 지켜 핍니다. 저는 짧고도 긴 개화를 한 번도 마음놓고 즐겨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이 한창을 뚜렷이 보고 기억했으면 해요. 앞으로 살아갈 계절은 많지만, 가장 젊을 때 보내는 봄은 이번이 마지막이니까요. 구름에 달 가듯이 조용히 스러지는 날들이 묵묵히 돌아오지만 앞으로는 봄꽃처럼 환하고, 설레는 날들이 더 많아지기를.
04.06 19:34